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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늙은 애완견의 변명
서재남
내꼴을 보게만은
네모 반듯하게 각(角)져 있던 양어깨가
귀퉁이 뭉툭 잘려나가고 둥글납작 이 모양일세
대낮에 도둑이 들어 다 털어 가도
와악 달려들어 물어뜯기는커녕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네
왈왈왈 짖는 것을 잊어버린 지도 오랠세
잔뜩 주눅 든 눈으로 쥔 눈치보다가
먹이 앞에 꼬리 흔드는 재주나 부려서
배부르면 순하디 순하게 엎으러져
코골며 잠이나 퍼자는
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중년의 개일세
그런 소리 마시게
내 꼴이 왕년엔 이러지 않았어
귀는 항시 파르라니 날이 서 있었고
눈빛은 항시 때록대록 형형했었지
목울대도 툭 튀어 나와 소리 한번 질렀다 하면
동네가 다 들썩거렸지
코는 또 어떻고, 가히 사냥개다웠지
요즘엔 몇 남은 이빨마저 써금써금한데
손톱이고 발톱이고 단정하게 일쑤 잘려나가
서푼어치 자존심마저 일으켜 세울 수가 없으이
그 윤기 잘잘 흐르던 털도 다 뜯겨나가고
솔기 터진 옆구리로 낡읏낡읏해진 양심만 간혹가다
찬바람 들락거리듯 하네
그래도 그 것이 개털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니
위안이 되긴 하네
가식과 위선의 악세사리벙거지 뒤집어쓰고
이대로 후줄근하게 늙어 갈 수만은 없어
마음 고쳐먹을 생각 않는 건 아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으니
나, 정말 한심한 개새끼 아닌가!
내 보기에도 몰골이 정말 말이 아닐세
어쩌다 이 꼴이 됐을까
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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