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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어서 가거라
- 아프가니스탄 2001년 여름 9월 -
무애자
손님이 온단다,
어서 떠나거라.
이웃들 몇은 이미
어젯밤에 떠났다.
우즈벡이든 다람살라든
네 처 새끼들 데리고
날 밝기 전에
저 고개 넘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아들아
어서 가거라.
천애절벽 험준한 산악지대
거저 주며 살으래도 고개 저을
척박한 땅에 곧
우뢰처럼 지진처럼
낯선 이들이 온다는구나.
반기지 않건만
꼭 오겠다는구나.
목숨 내어 놓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저 위태로운 절벽을
밧줄도 없이
벌떼처럼 하늘 길로 해서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오지 못해 안달병이 났다는구나.
조상 님들 혼백,
산천 자락자락에 바람결로 감돌고
너와 나 태어나서 자라고
장차 죽어 묻힐 이 땅,
어느 시러배 잡놈이
감히 더러운 입김을 쐬인단 말이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치지 못하리라.
날벌레 한 마리도
어찌하지 못하리라.
아들아, 내 피 같은 아들아.
자식들, 특히나 딸들 간수 잘 하거라.
부디 저 놈들 눈에 안 띄게 꼭꼭 숨겨 두거라.
때 되면
이 자리에 다시
흙집 짓고 곡식 심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아들아
너 예 와서 살아라,
꼭.
2003년 8월 9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미국(尾國)의 침공이 있은지 1년 반이 지났다.
오늘도 저기선
풀도 꽃도 돋고
아이들이 태어난다
세상은 돈다.
칼 가지고 노는 놈,
칼에 다친다
반드시 그럴 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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