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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음

개들의 문상(問喪)

by RobotWizard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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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문상(問喪)

  서재남

그럼, 그게 어딘가
왈왈왈, 저 개들 짖는 소리 안 들리고
그 사나운 발톱,이빨에 물어뜯기고 찢기어
더는 거지발싸개 꼴 안 당해도 되니
그 천만다행 아니라고

벼랑 끝 낭떠러지로 등 떠밀던 무리들
그렇게 내몰리도록 왼눈 하나 깜짝 않던 무리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주검 앞에 눕혀놓고도 무슨 헛소린들 못하랴만
네가 죽였네 내가 죽였네
참 말들도 많네 그래.
숙연하고 경건해야할 상가에
어찌 된 일로 사람은 몇 안 보이고
웬 놈의 날짐승 들짐승들이 저리
똥통에 구더기 끓듯 드글드글하는지

퍼주네 어쩌네
그리도 도끼눈 뜨고 훑닦던 것들이
설령 좀 퍼주었으면
그게 바로 같이 살자는 것일진대
제 핏줄에게도 그만한 적선을 마다는 것들이
무슨 낯으로 절로 터진 입이라고
주제넘게 국민통합,민족화해...
좋아하네, 남북통일, 세계평화?
아나!

저것들 제각기 꿍심들은 따로 두고서
넉살에 비윗장 하나는 좋아
너도나도 캐갱 캐갱 덩달아 짖네만은
말이 좋아 문상이지, 애도는 무슨...
벌써부터 한 비짝에 모여서들
비통한 죽음마저 능멸하며
저 밥그릇을 누가 챙길 것인가
더러워라, 숟가락 몽뎅이 치켜들고
몬네몬네하고들 앉았네,
큰 경사 만났네.

육로로 갈 텐가,
철로로 갈 텐가
아니면 속초서 배타고 물길로 갈 텐가?
가서
금강산 자락 어디쯤에
한 줌 재로 흩뿌려져
오늘은 개성 쪽 돌아보고
내일은 동해 푸른 물도 바라보고
사철 욱신거리는 강토 허리 베고 거기 누웠으면
이 꼴 저 꼴 더러운 꼴 안 보고
별 추잡스런 소리 안 듣고
차라리 그 속으나 좀 편할랑가
동해선 철길로 기차들 분주히 오가는 꼴
바라볼 날이 있을랑가 어쩔랑가


200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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