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너희는 그것이 그리도 맛나냐

RobotWizard 2022. 1. 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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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것이 그리도 맛나냐

  서재남


내 여름 내내 농사지어서 쌀 부치고
고추마늘 양념 일습 싸보낼 적엔
어린 제 새끼 두 것들
이 땅의 기운, 하늘의 기운 옹골차게
들어찬 것으로만 먹여서
아무 잔병치레 없이 기골 장대하게 키우라고
그러라고 신신당부 일렀건마는
아무리 맞벌이한다고 에미란 것이
제 새끼 밥 해 먹일 생각은 않고
만날 이런 것만 사다가 먹이니
야들이 이 모양이지

이 할미 올라오면서 가져온 시골밭 무 시래기에다
된장 듬뿍 풀어 국 맛있게 끓이고
새 김치 담아 기름기 자르르 하게 더운 밥해서
턱밑에 들이밀어도 움쩍도 않던 것들이
피자 한판에 햄버거 두 개씩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니
아이고 어쩔꺼나
너희는 그것이 그리도 맛나냐
이런 것을 먹고 장차 무슨 힘을 쓸꺼나
아무리 변한 세상이라고
새끼들을 남의 것 먹여 길러서 어디다 쓸꼬

젊은 메느리한테 할미는
내놓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끌끌끌
어린 손주들 엉덩이 토닥거리며
아이고 불쌍한 내 강아지들
어째야 쓸꺼나
밥을 먹어야 쓸 것인디
한숟가락을 먹어도
밥을 먹어야 쓸 것인디
내후년 지나면 쌀농사도 끝장이라는디
사다 먹는 남의 쌀이
어디 내 것만큼 허간디


  200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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