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겁없는 것들
RobotWizard
2022. 1. 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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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는 것들
서재남(무애자)
시청에서 봄철 가로정빈가 뭔가 한다고
굴착기로 가로수를 들어낸 자리
그 아래 무참히 부서져버린 집을 보수하느라
울력 나온 개미들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왁자하게 떠들며 참을 먹는다
흙 들어간 장화를 벗어 털며
풀잎 끝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워 문
나이 듬직한 개미에게 몇 마디 말을 시켜본다
"이 넓고 넓은 땅, 저 쪽에 안전한 데도 많은데
왜 하필 도로 여기다가......?"
대꾸가 없기에 다시,
"저기는 차도 사람도 안 다니고 경관도 수려하고
아무리 큰비와도 물 한 방울 안 닿겠구만
죽자 사자 이 터를 고집하는 이유가 뭐요?"
역시 묵묵부답이니, 더 큰소리로
"내년에 또 파헤쳐 버릴게 뻔한 걸
아무렴 인간을 이겨먹을 것 같아 그러나요?
이봐요 아저씨, 내 말을 잡수시우?"
어리석은 소리 말라는 듯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것은
당할 때 당하더라도 달리 어째볼 도리가 없다는 겐가
이상한 걸로 치면 어디 개미 뿐인가
해마다 홍수 때면 보름씩은 물에 잠기는데도
바로 그 자리에 또닥또닥 다시 집을 짓는
저지대 상습침수지역의 주민들도 그렇고
그 참혹했던 대구참사가 언젯적 일이라고
매일 아침저녁 미여터지는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나도 그렇고
이제는 미군의 소굴이 되어버린 바그다드 시내를
꾸역꾸역 제 발로 기어드는 저 지방 사람들도 그렇고
미련 방퉁이들이 겁도 없기는
200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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