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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주의보

RobotWizard 2022. 1. 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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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주의보

  서 재 남


눈이 온다는데
와도 엄청나게 많이 온다고
기상대가 그러는데
어쩌고 있는가 몰라
그 까짓 거 라면박스 보다 못한
콘테이너 지붕 안 무너질라나 몰라

집이고 전답이고
마을을 죄다 휩쓸어 못쓰게 만들고
집채만한 바윗덩이 굴려다
마당 한가운데 처박아 놓고
유유자적 내빼던 지난 여름 그
징하고 징한 놈의 큰물
그 무서운 놈의 물

다시 그 자리에 터 다듬어
얼기설기 뼈대 세우고 지붕이나 얽었을 뿐
사람 들어가 살 집 되려면
미장해야지 장판 깔아야지 도배해야지
어쩌든지 이 겨울이나 무사히 나야지
빈한한 살림살이
부엌 구석에 쌓아 놓고 내려와
늙은 몸뚱이보다 부실한 콘테이너
문짝 밀치고 들어서면
밤짐승처럼 훅 달겨드는 냉기
어서 날 풀려야 살겠다

그런데, 또 눈이 온다네
저 번 보다도 더 많이 온다네
그, 사람 못 살 산간 오지에
해마다 오는 눈이건만
물이라면 이가 갈릴 터
흐르는 물만 무서운가
눈사태는 면해 다행히 무사하다손 쳐도
한 열흘 고립되어 버리면...
구호품으로 받은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살 텐데
전주(電柱)라도 넘어져 버리면...
두 내외 지금 어쩌고 있는지



200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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